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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업과 금융권의 연계


V3 만드는 A 기업과 금융권의 밀접한 관계가 왜 새삼스럽게 회자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뱅킹만 하려고 하면 이것저것 미친듯이 설치된다고 불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그 설치되는 프로그램 리스트는 눈여겨 본 적이 없는건가.


ps. 영웅과 괴물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스토리는 영화나 만화의 클리셰가 아니다. 90년대의 영웅이 2000년대에는 정부와 법규제를 등에 업고 배를 불린다.

한국어 위키가 쓰레기인 이유가 다 있다.

위키백과 민주주의 지수 누가 작성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 위키가 쓰레기인 직접적인 증거를 오늘도 하나 보게 된다.

한국어 위키의 민주주의 지수 항목을 보자.

첫 머리에 명백히 민주주의 지수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와 있다.

민주주의 지수는 《이코노미스트》지가 167개국의 민주주의의 상태를 조사하여 작성한 지수이다. 이코노미스트 정보분석기구에서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 '시민의 권리', '정부의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의 다섯 가지 범주에 대한 지수와 함께 수량화하였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 정보분석기구의 민주주의 지수에 의하면, 노르웨이가 10점 만점에 9.8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1.08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1] 각 나라들은 '완전한 민주주의', '결함있는 민주주의', '혼합체제', '권위주의 체제'로 분류된다.


민주주의 지수는 이코노미스트 지가 작성했다고 나와 있고, 2010 년 결과가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자기 입맛에 안 맞으니까 한국 항목은 고쳤다니 이게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보다 낮은 지수의 국가가 완전 민주주의로 분류되어 있는데도 (예: 우루과이), 한국은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다른 항목은 전혀 고치지 않았다. 즉, 저 사람은 이코노미스트 지에서 한국을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분류했다고 자료를 날조한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은 결함있는 민주주의가 맞는 것 같다. 통진당 사태처럼 일부 종북이니 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어 위키가 그 실태의 사례다.  출처로 pdf 까지 링크되어 있는 글을 멋대로 고치고 항목 작성자를 준엄하게 꾸짖는 이 신들린 개그 같은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무슨 민주주의...



관우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었을까

관우가 명장이라고 우기는 일부 사람들은 이상하다.

관우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삼국지연의처럼 한 사람의 장수가 수백, 수천의 군사를 물리치는 것이 완전한 판타지이며, 지휘관은 오히려 후방에서 몸을 사려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항상 의문이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본 결과, 관우는 사실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이 세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결론에 관우 신앙의 존재가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고, 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관우 사후 후대의 일인 것도 맞다. 단순히 이것으로 사이비 교주 설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일단, 이탈리아종마 님도 지적하셨듯이, 만인지적이나 무신 같은 칭호에 비해 실적이 거의 전무하다. 관우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대부분이 전투에서 패하고 도주하는 것이었다. 유비 세력이 확실한 무력을 보여준 것은 촉 정복 시기가 유일한데, 관우는 이 때 이미 유비와 결별하다시피 하고 형주를 지키는 역할만 맡았을 뿐이었다. 객관적으로 관우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맹장들이 많은 난세에 관우가 어떻게 만인지적 같은 칭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문선명의 축구 실력 같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과연 관우는 그 당시 충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관우에 대한 충의의 이야기라면 대표적인 것이 조조의 제의를 뿌리치고 유비에게 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가 미담은 될 수 있어도 충의의 대표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자. 그 당시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한 황실에 충성을 다해 죽은 신하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관우는 조조와 결코 나쁜 사이가 아니었고, 한 황실에 특별한 충성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그 당시 원소의 식객이었던 무명의 유비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충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야기 하면 대체로 충신의 죽음이나 낙향으로 끝을 맺지 않던가. 게다가 제갈량 영입 이후 관우는 유비와 완전히 갈라서 버린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유비나 장비의 존재다. 유비는 관우의 주군이었고, 여러가지로 볼 때 실제로는 장비가 관우보다 서열이 높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많다. 영웅에게 아버지는 없다는 말처럼, 누군가를 신격화 하려고 할 때 가장 걸리는 것은 그보다 명확하게 서열이 높은 사람들의 존재이다. 관우가 명망으로만 신격화가 되었다면 유비는 그보다 더욱 신격화 되어야 했던 것 아닐까?


약간 이야기를 돌려서, 유관장 세 사람이 세력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해 보자. 유비는 세력의 주도자, 지도자이니 일단 열외로 놓자. 장비는 정사로 추측하건대 지방 호족 출신이고 세력을 일으킬 때 군사와 물자를 댔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2인자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그렇다면 관우는 무엇인가? 관우는 고향에서 도망쳐온 도망자이며, 가진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관우는 유비, 장비와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었을까. 그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우는 장비와 더불어 유비 세력의 흔들리지 않는 2인자 자리를 지킨다. (제갈량이 합류하기 전까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이는 정말 기적적인 일 아닌가?

이 많은 의문들은 관우가 사실 맹장이 아니라 두뇌 역할이었다고 하면 다소 해결된다. 관우가 사실 끝내주는 말빨로 사람들을 선동시키는 능력이 갑이었다면? 그리고 유비와 장비가 이 능력과 결탁해서 세력을 일으킨 것이라면? 단순히 연의의 창작일 지도 모르지만, 유비가 형주에서 조조에게 쫓겨 손권에게 몸을 의탁할 때 백성들이 따랐다는 것도 상당히 설명될 수 있다. 원래 강남 지방은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는 지방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보면 조조와의 이야기도 꽤 설명된다. 사실 조조가 관우를 탐냈다는 이야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조조는 원래 맹장보다 치세를 위한 두뇌 영입에 더 열심인 사람이었으며, 실리 따지기를 좋아했던 조조가 관우의 성품에 매료되었다는 말은 심각하게 안 어울리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조조는 똑같이 만인지적이라던 장비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관우가 맹장이라기보다 치세에 능한 인물이라면 이상한 점들이 사라진다.

이 설은 제갈량과 관우의 불화도 많이 설명한다. 이 둘이 2인자 자리를 두고 다툰 것이 아니라 애초에 둘이 담당하는 분야가 겹쳐서 다투었다고 하면, 관우가 촉 정벌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후방에서 형주를 떼어줘서 독립시켜 버린 것도 이해가 된다. (기억해 보자. 손권은 형주를 돌려받기 위해 유비와 협상하지 않고, 관우와 협상을 했다. 관우 역시 영토 반환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주군일 유비에게 상의하지 않고 멋대로 정하고 있다.) 제갈량은 일생 내내 인재부족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정말 관우가 우직한 맹장이었다면 이를 구슬려서 쓰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을 것이다. 그러나 관우는 내쳐지고 다시는 부름을 받지 못한다. 관우가 죽었을 때에도 촉에서는 구원의 손길을 한 번 내밀지 않았다.


내 결론 겸 상상은 이렇다. 관우는 사람을 홀리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으나 이를 전략적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고, 이에 유비는 모사를 제갈량으로 갈아치우고, 제갈량과 공존할 수 없는 관우를 후방수비라는 명목 하에 독립시켜 버린다. 형주에서 홀로 세력을 구축하게 된 관우는 점점 그 마각(..)을 드러내고, 유비에게 버림받은 한탄으로 점점 오만해져 간다. 종국에는 파멸을 맞았지만, 뿌리깊게 내린 신앙은 결국 미래에 꽃을 피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ps. 그냥 상상입니다 상상...

민주화라는 단어의 사용은 오래갈 것 같다.

net진보님께 드리는 질문



민주화라는 단어의 사용, 혹은 오용하는 현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인터넷에서 종종 접하는 곤혹스러운 현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이 시민 B 라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요즘 같이 고등교육의 인플레 시대에 스스로 지식인이 아닌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사회의 상식을 자신이나 '우리'라고 지칭되는 소규모 무리가 결정하고 이를 선전, 운동한다는 말이 얼마나 황당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의도적인 단어 사용의 회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 학부생이라는 것만으로 지식인 대우를 받던 과거의 계몽주의가 떠오를 뿐이다. 의식과 상식의 선전, 운동이라니...  민주화라는 단어의 등장이 이 시대착오적 계몽주의자들의 작품인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인가.

그 뿐만 아니라 그 논의 자체도 황당하다. 21 세기 계몽주의자들은 논의를 하지만,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다. 민주화라는 유행어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어지는데, 1) 유행어의 등장 원인은 생각해보지만 이를 강제로 막자는 것은 효과도 없고 그냥 통제에 지나지 않는 과민 반응이다, 2) 민주화라는 단어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며 이를 조롱하는 유행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라는 두 가지 흐름이다.

문제는 키케로 님의 글 같은 경우를 봐도, 2 번을 택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단 막고 보자는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고, 누구나 나와 동일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문제가 있다. 키케로 님의 투트랙 전략이라는 말의 어디가 대체 전략이라는 말인가. 배제, 논의를 촉발, 동의된 가치를 창출, 또 다시 배제. 여기서 아무리 끄집어내도, 일단 단어의 사용을 막고, 계몽시켜 사상을 개조하자라는 말 외에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다. 논의를 촉발시켜 민주주의에 대한 동의된 가치를 창출? 과연 그 논의의 결과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동의할 것인가? 논의 끝에 배제되는 것이 그들 자신이어도 그 결과에 순응할 것인가?

이들의 착각은, 이미 이 '전략'이라는 것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언론과 표현의 통제 때문에 정부에서 보급한 유행어인가? 민주화라는 유행어 자체가 이미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껄끄럽다면 방종--에 의해 탄생한 유행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역지사지를 해 보았다.


역지사지를 한 번 해 보았다.


그런데 타국에서 외국인 범죄가 늘어난다고 이민이나 입국 심사를 강화한다고 해서 우리가 해외에 가서 시위라도 하는가, 아니면 외교적 항의라도 하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이런 짓을 한다면 이게 미친 짓이지. 내정 간섭 수준이잖아..


미국에서 얼마 전 한국인의 총기 난사 사고? 이 일로 미국에서 한국인 입국/이민을 제한한다고 해서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나?

미국은 9/11 이후에 외국인 입국 심사를 대폭 강화했다. 지문 날인을 시작했고, 사회보장번호를 남발하지 않고, 입국 스테이터스를 바꾸는 것에 엄격한 단속을 시작했다. 10 년도 안 된 일이다. 역지사지를 해 봐도 별 다른 결론이 안 나온다.

지금도 가끔씩 들리지만, 여성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뚜렷한 직업이 없는 젊은 여성이 미국에서 입국 거부 당했다는 얘기들이 간간히 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일에 대해 안타깝지만 그 나라에서 막는 걸 어쩌겠냐고 한다.

1,2 년 쯤 전에 미국 LA 부근에서 한국인 여성이 신호 위반인가 과속인가로 미국 경찰의 거듭된 제지를 받았으나 도주하여 결국 총에 사살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평범한 아기 엄마였고,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죽은 사람이니 알 수 없지만, 불법 체류이거나 체류 신분에 문제가 생길까봐 그랬다는 추측만 있었다. 물론 안타깝지만 우리가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미국 경찰의 방식이니까.


... 역지사지를 해 봤자 오히려 우리도 외국인 범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된다는 결론 밖에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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